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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과 경제/인물 소개

#1 워런 버핏의 일대기, 날 때부터 남달랐다

by 라이언 Ryan :) 202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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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워런 버핏의 일대기, 날 때부터 남달랐다

 안녕하세요. 라이언의 주식과 경제읽기의 라이언입니다. 워런 버핏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투자인생 길이만큼 단순히 기치투자자, 장기투자자라는 프레임에 가둬둘 수 없는 변화의 시기를 꽤나 가졌습니다. 현재는 운용하는 자산규모가 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모든 투자에 버핏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산이 불어감에 따라 어떤 스타일로 투자를 했었고 어떤 사건을 통해 투자 스타일이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보시면 더 재미있을 거 같네요.

 

남다른 6살의 워런 버핏

 워런 버핏의 아버지는 오마하

에서 증권브로커 일을 했습니다. 엄청 크게 했던 것은 아니며 중소형 부티크 형태의 증권사를 직접 운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도지사까지 지낸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래 이력들은 어릴때부터 본인이 직접 일군 자산이라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여튼 날 때부터 좋은 환경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전혀 익숙치 않지만, 그도 6살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귀여운 모습과는 다르게 6살 때부터 이미 코카콜라를 6팩을 25%의 마진을 붙여 팔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펩시 콜라를 마셨다고 합니다. 이유는 펩시가 더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남달라 보였던 워런 버핏은 14살 때 현재가치로 무려 5천만원의 자산을 스스로 일군 자산가였습니다. 13살때부터 신문배달을 한 것은 여러 매체에서 소개 되고 있지만, 벌써부터 그는 핀볼 사업을 크게 한 다음에 퇴역 군인에게 매각 했으며 경마잡지 사업도 했으며 골프공 주워주기 사업등을 했습니다. 사업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규모가 지금의 워런 버핏을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정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5천만원의 자산을 갖추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은 역시나 고등학교때까지 했던 워싱턴 포스트지 신문배달이었습니다.

 

 

11살때부터 시작한 주식투자

 

 증권 브로커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일찍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그리고 워런 버핏도 피해갈 수 없는 차티스트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을 접하게 되어 읽자마자 그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 '현명한 투자자'를 몇번이고 닳도록 읽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차티스트에서 가치투자자로의 길로 넘어오게 됩니다.

 

 19살때 이미 1억여원의 자산을 갖춘 그였으며 학창시절에 읽었던 내용을 구체적인 페이지까지 언급해서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도 굉장히 좋았으며 공부도 잘하는 그야말로 수재였습니다. 대학원에 가려고 알아보던 중 하버드를 선택했는데 20살때 이미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지라 하버드에서 어려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 곳이 콜롬비아 비즈니스 스쿨로 바로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곳을 찾아 선택하게 됩니다. 워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이미 고인인줄 알았는데 콜롬비아 비즈니스 스쿨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입학을 선택하게 되고,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벤저민 그레이엄에게서 A+을 받은 유일한 학생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20살때 자산은 이미 1.5억에 육박합니다.

 

타고난 수재의 사회생활

 

 대학원을 졸업한 24세의 워런 버핏은 이미 7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벤저민 그레이엄이 운영하는 헷지펀드 회사에서 무임금으로 일하길 원했는데 소수의 유대인만 직원으로 두고 있던 벤저민 그레이엄은 이를 거절하게 되고 워런 버핏은 아버지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몇년뒤에 벤저민 그레이엄이 워런 버핏에게 2인자의 자리를 줄테니 오라고 스카웃 제의를 하지만, 아버지 회사에서 배울만큼 배웠다고 생각한 그는 1인자가 아니면 싫다고 거절합니다.

 

 그랬던 그는 26세(16억의 자산을 보유)에 자신의 투자회사를 만든뒤 7개를 파트너십 회사를 설립한 후, 버핏 파트너십이라는 하나의 회사로 통합하는 작업을 합니다. 이 당시 버핏은 투자 생활을 접고 보유 자산만을 굴릴 생각을 하며 살 요량으로 로스쿨을 준비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 가족의 도움을 받아며 가족한테서 10억의 자금을 융통받아서 버핏 파트너십을 운영하고 자신의 자산은 자신이 관리하는 철저하게 안전하게 자산을 가져가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당시 운도 아주 잘 따라줬던게 벤저민 그레이엄이 자신의 펀드회사를 접으면서 떠나는 고객들에게 버핏의 회사를 소개해줘서 안 그래도 수익률이 좋았던 버핏의 회사에 어마어마한 투자자금이 들어오게 됩니다. 물론 실력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추천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버핏의 젊은 시절을 살펴보면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 더 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모든 상황과 자신의 실력이 완벽해 보일 지경입니다.

 

초기 워런 버핏의 투자 스타일

 버핏은 버핏 파트너십을 3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자산을 운용 했습니다. 초기 투자 스타일은 밴저민 그레이엄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나 투자 규칙들은 모두 그레이엄이 하던 것을 그대로 본따서 구성했습니다. 각설하고 투자 스타일에 대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GENERAL, WORKOUT, CONTROL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버핏은 본래 회사가 갖고 있는 자산가치보다 한참 떨어지는 주식들을 분산해서 다양하게 투자했습니다. 지분을 조금씩 늘려가다보면 주가 상승이 일어나는 종목이 생깁니다. 그러면 그 종목은 팔고 다른 종목을 포트폴리오에 투입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 단계를 통상 GENERAL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간 오르지 않는 주식이었습니다. 그런 종목은 인수해서 자신이 직접 경영에 간섭해서 개선시켜서 자신이 매집한 종목의 가치가 올라 주가가 상승할 수 있는 포지션을 만들어 냅니다. 이 단계가 CONTROL 영역에 포함됩니다.

 

 마지막으로 WORKOUT이 버핏에게 굉장히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준 방식인데 당시에는 사모펀드 형태이며 공매도를 하거나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펀드는 거의 없었는데 당시 버핏은 공매도와 레버리지를 적극활용해서 수익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킵니다. 이런 형태로 투자에 임하던 그는 29세에 현재가치로 6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며 인생 최고의 파트너를 이 시기에 만나게 됩니다.

 

 적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나눠서 포스팅 해야겠네요. 다음편에 버핏의 중기? 시절에 대해 포스팅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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