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농부 박영옥 그는 누구인가?(1세대 슈퍼 개미 1,000억대 부자)
1세대 슈퍼개미 주식 농부 박영옥의 이름은 주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겁니다. 꾸준히 농부가 농작물을 수확하듯이 주식을 사 모아 투자하라는 의미에서 주식 농부라는 별칭이 붙었는데요. 현재 정확한 그의 자산은 박영옥 자신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일단 5%이상 지분 공시 돼 있는 주식만 살펴봐도 1,500억 이상을 상회하기 때문에 그의 자산은 최소 그 정도 수준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박영옥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넉넉하지 않은 그의 어린 시절
그는 1961년생으로 현재 61세입니다. 전북 장수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그가 7살 때 아버지를 여의어 어릴 때부터 가장으로 책임을 지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중학교 진학조차 포기했어야 할 환경이었지만, 다행히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후원자가 돼어 중학교 등록금을 납부해 주신 덕에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중학교 졸업 후 서울에 상경하여 공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놓지 않았던 배움의 끈
당시에는 12~15시간 가량 근무를 했으며 한 달에 고작 두 번 쉴 수 있었기에 학업을 할 수 있는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공장 생활 3년차에 우연히 방송통신고등학교 모집 요강을 접하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을 하며 다소간의 시간을 보냈으나 방송통신고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 공부에 더 뜻이 있어 너무 긴 시간을 일하는 공장을 그만두고 오전에 신문배달을 하며 오후에는 학원에서 조교로 공부하며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이 당시에 얼마나 고되게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공부를 했는지 버스를 타다가 정신을 잃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힘든 입시생활 끝에 입학한 중앙대
고생 끝에 당시 특수장학생 중 하나였던 승단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등록금 전액과 매달 10만 원을 지원받으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3만원은 집에 보내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사용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할 때 12만원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좋은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사회에 고마움을 느끼게 됐으며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들은 대학생활이 낭만적일 수 있었지만,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최대한 빠르게 경제적인 독립만을 고민하던 그였기에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당시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증권사와의 인연
대학생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공인회계사 공부를 했었는데 두 번을 낙방했습니다. 그러나 3학년 때 교수님의 권유로 우연히 증권분석사 시험을 치렀는데 덜컥 합격을 하는 바람에 증권시장과 첫 인연을 맺게 됩니다.
증권분석사 덕분에 4학년 때부터 현대투자연구소 연구원으로 발탁돼 아르바이트 겸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현대투자연구소는 우리나라 최초로 유료 주식정보지를 발간한 탓에 선임연구원으로서 전국을 돌며 투자설명회를 개최하거나 주간기자생활을 하며 자본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현대투자연구소에서 전국에 강연을 하며 돌아다니던 그는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대신증권에 입사하게 됩니다. 중앙대 졸업 후 4년간 대신증권에서 증권영업을 하다 국제투자자문으로 옮겨 펀드매니저로도 활동했습니다. 1997년에는 교보증권 압구정지점장을 지냈는데 그 때 마침 IMF 외환위기를 직면하게 됩니다.
외환위기의 혹독한 경험
지금 주식의 대가도 외환위기는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1,000포인트 하던 주가는 300포인트까지 곤두박질 쳤고 고객의 손실을 지점장으로서 고스란히 떠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께 사드렸던 집을 팔아 고객의 손실금을 메워줘야 할만큼 어려운 시기를 거쳤지만, 이 시기를 이겨냄으로써 주식 투자에 대한 생각과 투자법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고합니다.
그는 외환위기를 회복한 주가가 2~3배 이상으로 상승하는 것을 보며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자신의 철학을 견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 프리랜서로 독립을 결심하게 됩니다. 2000년부터 삼성증권에서 투자전문위원으로 생활했으며 2001년 9.11테러로 증권가의 위기를 경험하며 전업투자자가 되기로 합니다. 이전까지는 기업들의 가치를 알면서도 고객들이 요구하면 주식을 팔았어야 하는 투자는 자신이 지향하는 투자가 아님을 확신하며 전업투자자가 되기로 합니다.
전업투자자의 길
전업투자자를 하면 남들이 봤을 때 굉장히 자유로워 보이지만, 박영옥은 오히려 직장생활보다 더 절제된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조언합니다. 반면에 누군가에 얽매이지 않고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합니다.
외환위기와 9.11테러를 겪으며 견지했던 투자철학을 기반으로 장기투자를 지속해 왔으며 금융위기가 왔을 때도 자신의 철학을 견지했으며 박영옥의 농심 투자의 주요한 원칙은 농부가 좋은 씨앗을 고를 때 최선을 다하듯이 기업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기업의 재무 상태와 지배구조는 건전한지, 건전한 CEO가 있는지, 사회적 책임 준수 여부를 따진 후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박영옥이 말하는 제일 중요한 투자 원칙입니다.
2006년부터는 스마트인컴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현제까지 자신의 투자철학을 널리 알리고자 현재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투자를 시작하고 여러 뉴스와 소음들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이면 나한테 들어오는 정보들이 소음인지 진짜 실체가 있는 정보인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이럴 때일수록 다소 뻔해보일 수도 있는 이런 투자 구루들의 투자 원칙을 되새김질 해보는 것도 현재 자신의 투자를 안전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준비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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